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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시선

매출은 늘었는데 현금은 줄었다면? 고수는 손익계산서보다 이것을 봅니다

읽는 시간 약 5분

사상 최대 매출과 큰 폭의 영업이익 증가. 실적 발표 첫 장만 보면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주가는 힘을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투자자는 시장이 좋은 실적을 몰라준다고 말하지만, 시장은 이미 다음 장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래 시장을 지켜보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실적이 좋을수록 영업이익 옆에 영업활동현금흐름을 나란히 적어보는 것입니다. 이익은 늘었는데 현금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호실적이라는 결론을 미룹니다.

영업이익 520억 원, 그런데 현금은 마이너스 180억 원

숫자를 하나 놓고 보겠습니다.

  • 매출 3,000억 원에서 3,600억 원으로 증가
  • 영업이익 400억 원에서 520억 원으로 증가
  • 영업활동현금흐름 플러스 300억 원에서 마이너스 180억 원으로 감소

손익계산서만 보면 성장기업입니다. 하지만 재무상태표를 보니 매출채권이 420억 원, 재고자산이 260억 원 늘었습니다. 제품은 팔았지만 아직 대금을 받지 못했고, 앞으로 팔 제품을 만드는 데 현금을 먼저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라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묶여 있는 현금이 다음 분기에 돌아오는 돈인지, 결국 손실로 바뀔 돈인지가 핵심입니다.

주문이 갑자기 늘어난 기업은 납품과 대금 회수 사이에 시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음 분기 매출채권이 줄고 현금흐름이 회복된다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늘어난 원재료가 생산과 매출로 이어지고 영업이익률까지 유지된다면 재고 증가도 성장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매출이 10% 늘어나는 동안 매출채권과 재고가 30~40%씩 계속 증가한다면 다른 문제입니다. 외상 조건을 완화해 매출을 앞당겼거나, 수요를 잘못 읽어 완제품이 쌓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손충당금과 재고평가손실까지 증가한다면 장부에 잡힌 이익 일부가 나중에 비용으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분기는 시차일 수 있지만, 세 분기는 습관이다

현금흐름표는 한 분기만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계절성이 있는 기업은 성수기를 앞두고 재고를 확보하고, 대형 거래처의 결제일이 며칠 넘어가면서 현금 유입이 다음 분기로 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의 엇박자는 지켜봅니다. 대신 같은 현상이 3~4개 분기 반복되면 계절성이라는 설명을 의심합니다. 매출과 이익은 매번 증가하는데 영업현금흐름은 계속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이익을 현금으로 바꾸는 힘이 약한 것입니다.

내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최근 3년의 누적 숫자입니다. 누적 순이익은 꾸준히 늘었는데 누적 영업현금흐름이 현저히 뒤처진다면, 실적 발표 자료보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의 주석을 먼저 읽습니다. 한 분기의 이익은 회계로 설명할 수 있지만, 여러 해 동안 들어오지 않는 현금은 설명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금 감소에도 좋은 감소와 나쁜 감소가 있다

회사의 현금 잔액이 줄었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본업에서 현금을 충분히 벌고도 신규 공장에 투자하거나 차입금을 상환하면 통장 잔액은 감소합니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면 주주환원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금이 줄었다면 빠져나간 장소부터 찾아야 합니다.

  • 영업활동에서 줄었다면 매출채권과 재고를 확인합니다.
  • 투자활동에서 줄었다면 증설의 목적과 예상 수익성을 봅니다.
  • 재무활동에서 줄었다면 부채 상환인지 배당·자사주 매입인지 구분합니다.

영업으로 1,000억 원을 벌어 700억 원을 공장에 투자한 기업과, 영업현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차입금 1,000억 원으로 공장을 지은 기업은 같은 증설 기업이 아닙니다. 첫 번째 기업에는 성장을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두 번째 기업에는 다음 불황을 견뎌야 할 고정비와 이자비용이 남습니다.

실적 발표에서 내가 확인하는 네 가지

복잡한 계산보다 아래 네 가지를 같은 방향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최근 3년의 누적 순이익과 누적 영업활동현금흐름이 함께 증가했는가
  2. 매출채권과 재고가 매출보다 빠르게 늘고 있지는 않은가
  3. 늘어난 재고가 원재료인지, 팔리지 않은 완제품인지 확인했는가
  4. 영업현금흐름에서 설비투자비를 빼고도 현금이 남는가

좋은 기업은 매출만 키우지 않습니다. 이익을 현금으로 회수하고, 그 현금을 더 높은 수익을 낼 사업에 다시 배치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야 회사의 규모가 아니라 주주의 몫이 커집니다.

손익계산서는 기업이 이번 분기에 어떤 성적을 냈는지 보여줍니다. 현금흐름표는 그 성적이 실제 돈으로 남았는지 확인해 줍니다. 실적이 화려할수록 한 장 더 넘겨봐야 합니다.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게 해준 것은 좋은 숫자를 빨리 믿는 능력이 아니라, 그 숫자가 진짜인지 끝까지 확인하는 습관이었습니다.

가치의 시선
시장의 흐름과 기업의 가치를 공부해 온 개인 투자자입니다. 단기적인 주가 예측보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는 기준과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을 전합니다. 숫자 너머의 본질을 살피는 곳, ‘가치의 시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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